2012년 의료사 연구자들의 소모임으로 시작된 의료역사연구회가 창립 6주년을 맞이하여 학회지 '의료사회사연구'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연구회는 출범 이후 격월로 회원 각자의 논문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자신이 진행한 연구를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검토받는 기회는 소중했고, 발표자들은 그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의 글이 충실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구회의 회원 수가 증가하면서 발표된 논문 수도 늘어났고, 성원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할 수 있는 공간, 즉 학회지의 발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성과를 모임의 경계를 넘어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연구회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한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학회지를 발간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의료사회사연구'가 회원 각자의 연구 성과를 모은 모음집의 성격만을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시기와 지역은 다르지만, 우리는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사라는 주제를 어떻게 연구해야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질문이었고, 정답이 존재하는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언제,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면서 회원들 내부에는 의료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일정한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합의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학회지 발간은 그 공감대의 내용을 충실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리라 생각합니다. 학회지를 발간하는 다른 이유입니다.

우리가 가진 공감대 중 하나는 의료사가 사회사의 일환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료는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우리 학회지의 이름을 '의료사회사연구'로 지은 까닭입니다. 사회 속에는 고통을 겪는 환자, 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관료와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질병과 부상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노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는 변화해갔고, 복잡해졌습니다. 사회가 구성원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기울인 노력은 그 사회의 성격과 특질을 결정지었습니다. 한 사회를 이해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의료는 생로병사를 관할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생생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의료사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접근하자는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의료를 직접 만들고 펼치는 위치에 있지만, 그들 역시 생산자인 동시에 의료의 소비자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의 입장에서 의료를 접합니다. 이런 입장은 의료사를 학문이나 지식의 영역을 넘어 생활이나 문화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역사학은 정치경제 중심의 서술을 넘어 문화와 생활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보다 생생하고,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이해의 수단 중 하나가 소비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의료사에 접근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의료를 법이나 제도와 같은 형식을 넘어 그 내부에서 살아 숨 쉬었던 하나의 삶으로 이해하고 서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다음의 공감대는 의료사를 역사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의료사는 의학과 역사학, 두 영역에서 동시에 연구되어 왔습니다. 의학 영역에서 의료사는 좋은 의료인을 만들기 위한 의료인문학의 분과 학문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좋은 의료인 만들기는 역사학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 임무는 역사학이 소위 상아탑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 즉 현실과 함께 생동하는 학문이 될 수 있게 하였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역사학의 실용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사는 역사학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실용성을 넘어 그 사회를 이해하고 그 변화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의 발전 속도는 빠르고, 따라서 과거는 쉽게 비판이나 무시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의학의 측면에서 볼 때, 과거의 의료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료는 당시 사회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역사학 영역에서 의료사는 과거의 사회와 그 변동에 접근하는 하나의 통로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나아가 예전 이 공간에서 살아 숨 쉬었던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의료사를 통해 역사학은 생생해지고, 풍부해지고, 다양해질 것입니다.

역사는 변합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문제의식도, 우리 학회지도 그 역사와 함께 변할 것입니다. 변화가 역사의 필연이라면, 우리 학회지의 역할 중 하나는 우리 시대의 의미나 모습을 충실하게 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의료사회사연구'는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애정 어린 관심과 질정을 부탁드립니다.
2018.04

의료역사연구회